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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우 : 홍의 장군, 충익사, 생가

by 최미화 2026. 10. 30.

1. '홍의 장군' 곽재우

의령 곽재우 장군 동상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으로 본관은 현풍, 자는 계수, 호는 망우당입니다. 아버지는 황해도관찰사를 지낸 곽월이며, 어머니는 진주강씨로 경상남도 의령에서 출생하였습니다. 1585년(선조 18) 별시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답안지에 왕의 뜻에 거슬린 글귀가 있었기 때문에 파방되었습니다. 이 일로 과거를 포기하고 은거하다가 1592년 4월 14일 임진왜란이 일어나 왕이 의주로 피난하자 같은 달 22일 제일 먼저 의령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을 모아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의병의 군세는 더욱 커져 2천에 달하였고, 5월에는 함안군을 수복하고 정암진 도하작전을 전개한 왜병을 맞아 싸워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때 홍의를 입고 선두에서 많은 왜적을 무찔렀으므로 홍의장군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조정에서는 이 공을 인정하여 그해 7월 유곡찰방에 임명하였다가 다시 형조정랑을 제수하였습니다. 10월에는 절충장군으로 승진하여 조방장을 겸임하다가 정주목사에 임명되어 악견산성등 성지를 수축하였습니다. 또한 1차 진주성 전투에 휘하의 병사들을 보내어 김시민 장군이 승리하는데 조력하였습니다. 

 

 1595년 진주목사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가 1597년 정유재란 때 경상좌도방어사로 임명되어 다시 벼슬길에 나아가 화왕산성을 수비하면서 왜장 가토 기요마사군을 맞아 싸웠습니다. 이후 계모의 상을 이유로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창암진 강가에 망우정을 짓고 은둔하고 있다가 1604년(선조 37) 찰리사에 임명되어 안동의 천생산성을 보수하였고, 10월에는 가선대부용위상호군에 임명되었습니다. 

 

이후 또 다시 낙향하였다가 1610년(광해군 2년) 광해군의 간청으로 오위도총부의 부총관을 역임하였고, 이어 함경도관찰사를 거쳐 1612년 전라도병마절도사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습니다. 1613년(광해군 5)에는 영창대군을 신구(神救)하는 상소문을 올린 후에 다시 벼슬길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2. 충익사 : 천강 홍의 장군 곽재우의 충의 정신이 살아있는 곳!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중동에 있는사당입니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활약한 곽재우(1552~1617)와 그 휘하 장수 17명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습니다. 곽재우 장군은 명종 7년 (1552년) 경상남도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에서 출생하였는데 문무에 다 같이 띄어났으나, 나이 40세가 되도록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지냈습니다. 

 

 

 선조 25년(1592년) 4월 13일 왜병이 침입하여 서울로 진격해오자 "나라를 지키는 일을 관군에게만 맡길 수 없다."고 분연히 일어나 제일 먼저 의병을 모집하여 왜병의 침공을 막았습니다. 장군은 홍의를 두르로 백마를 타고서 휘하에 17명의 장수와 수천의 의병을 거느리면서 정암진, 기강, 현풍, 창녕, 화왕산성, 진주성 등의 전투에서 실로 신축ㄹ귀목하는 전략, 전술로 적을 크게 무찌르로 백전백승함으로써 왜병의 전라도 진격을 저지하였습니다. 

 

충의각 :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전국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한 의병장 곽재우 장군을 비롯한 휘하 17명장수 등 18정령의 이름과 본관, 호, 증직을 기록한 명판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입니다. 

 

의병탑 : 의병탑의 높이는 27이며, 가운데 둥근 18개의 백색고리는 곽재우장군과 17장령을 상징하고, 양쪽 기둥의 팔자형은 의병의 햇불을 상징합니다. 망우당 곽재우 장군만 섬기는게 아니라 그 휘하 장수들까지 모신다고 하는데, 나라를 위해 희생된 영웅들의 혼령을 모신다고 하니 뿌듯합니다. 또한 매년 6월 1일을 의병의 날로 지정하여 의병의 정신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3. 의병장 곽재우 생가

 경상남도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에 복원한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곽재우(1552~1617)장군의 생가입니다.  조선 중기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 형태로 꾸며졌으며, 안채.사랑채.별당.대문간채.중문간채, 대곳간채, 소곳간채 등 7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대지면적은 5,636.2㎡ 입니다. 의령군은 2008년 11월 생가활용 및 주변정비 사업을 계획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사업이 마무리되면 생가 내에 숙박체험시설과 건물 내의 생활모형이 마련되고, 생가 뒷산에는 곽재우가 칼싸움을 하던 장소와 공부하던 장소 등이 새로 정비됩니다. 

 

 생가 바로 앞에 '의령 세간리 은행나무'라는 명칭으로 천연기념물 제 302호로 지정된 수령 600년이 넘은 노거수가 있으며, 마을 입구에는 천연기념물 제493호인 '의령 세간리 현고수'가 있습니다. 현고수는 수령 520년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로 '북을 매던 나무'라는 뜻인데 임진왜란 때 곽재우장군이 이 느티나무에 큰 북을 매달고 치면서 전국 최초로 의병을 모아 훈련시켰다고 합니다. 

 

의령 세간리 현고수(느티나무)

곽재우가 처음 의병을 일으킬 때 이 느티나무에 북을 걸어 매고 쳤다 하여 현고수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 나무는 느티나무로서 가슴높이의 줄기둘레 7m, 키가 15m 에 달하며 나이는 약 520여 년 정도입니다. 이 느티나무가 현고수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연유가 있습니다. 조선 선조 25년(1592) 4월 13일 왜적이 부산포에 침입하자 당시 41세의 유생이었던 곽재우는 4월 22일 이곳 유곡면 세간리에서 이 느티나무에 큰 북을 매달고 치면서 전국 최초로 의병을 모아 훈련시켰고 의병들의 의식주는 가재를 털어 해결하였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이 나무는 느티나무보다는 현고수로 불리며 뜻있는 이들의 아낌을 받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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