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는 지금으로부터 약 2000여 년 전에 세워져서 1300여 년 전에 멸망 한 한반도에 있었던 나라입니다. 백제가 있었던 시대에 북쪽에는 고구려, 동쪽에는 신라가 있었으므로 그 시대를 삼국시대라고 합니다. 북쪽의 고구려가 드넒은 영토와 막강한 군대, 호방한 기풍을 가진 대제국이었고, 동쪽의 신라가 삼국 간의 싸움에서 최후의 승자가 된 나라라면, 백제는 동아시아의 바다를 지배하고 경영하면서 멋진 문화를 창조했던 나라였습니다.
1. 백제 역사이야기
백제의 건국
백제를 누가 언제 세웠는가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고구려를 세운 추모왕(주몽)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추모왕이 고구려를 세우기 전 부여에 있을 때 낳은 아들인 유리라는 사람이고, 다른 둘은 고구려를 세운 후에 얻은 비류와 온조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부여에 살던 유리가 증표를 가지고 추모왕을 찾아오자, 추모왕은 기뻐하며 유리를 태자로 삼았습니다. 비류와 온조는 더 이상 고구려에 비중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인 소서노와 함께 자신들을 따르는 사람들을 데리고 고구려를 떠나 새로운 땅을 찾아 남쪽으로 향했습니다. 계속 남쪽으로 이동하던 그들은 지금의 한강 유역에 이르렀습니다.
온조는 그곳이 강이 흐르고 기름지므로 나라를 세우기에 적합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비류는 바다가 있는 곳이어야 큰 나라를 이룰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온조는 그대로 그곳에 남아 나라를 세웠고, 비류는 바다가 있는 곳인 서쪽으로 향하여 미추홀이라는 곳에 나라를 세웠습니다. 그래서 백제의 시조라 하면 비류와 온조 두 사람을 이야기하는데, 둘 중 백제의 첫 번째 왕으로 인정받는 사람은 온조입니다.
온조가 처음 나라를 세웠을 때에는 그 이름을 '십제'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나라가 점점 발전하고 커지면서 '백제'로 고쳤고, 이로부터 7백년 백제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2. 공산성의 역사적 이야기

공산성은 웅진시대 백제 왕도로 수도를 사비(부여)로 옮기기까지 64년간 (문주왕 원년 475년 ~ 성왕 16년 538년) 백제의 수도였습니다. 특히 공산성은 요즘 중국이 자기네 역사라고 왜곡하는 고구려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에 더욱 의미 있습니다. 공산성이 있는 공주(당시 웅진)가 백제의 왕도가 된 것은 고구려의 남진정책의 산물입니다. 장수왕이 이끄는 3만여 명의 고구려 군이 파죽지세로 밀려들자 백제의 왕(개로왕)까지 살해되는 참패 끝에 한성을 내주고 남쪽으로 쫓기기 시작했습니다.
475년 개로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문주왕은 밤장을 설쳐가며 남쪽으로 내려가다 금강을 넘고서야 비로소 한숨을 돌립니다. 도도히 흐른 금강을 바라본 문주왕은 '이곳이면 안심이다.'며 정착을 명한 뒤 웅진성(공산성-을 쌓고 백제 중흥의 야망을 키웁니다. 고구려에 쫓기던 문주왕이 공산성을 비롯한 공주에서 받은 느낌은 아픈 상처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어머니의 품과 같았습니다. 그 이유는 공산성에 올라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같은 분위기 때문인지, 백제 마지막 왕 의자왕은 나당 연합군에 의해 수도 사비성이 함락되자 태자와 함께 공산성(당시 웅진성)으로 피신했으며, 822년(신라 헌덕왕 14년) 아버지가 왕이 되지 못한데 불만을 품고 '정안'이라는 국호를 내걸고 난을 일으킨 김헌창도 광주, 전주, 충주 등을 아우르며 승승장구하다 관군에 쫓기자 공산성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조선 인조도 이괄의 난 때 반군들에 쫓겨 혼비백산 도망치다 난이 평정될 때까지 10여 일 동안 몸을 숨긴 곳이 바로 공산성입니다. 때문에 역사 속 공산성은 쫓기는 자의 피란처이자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어머니 품 속 같은 곳이었습니다.
3. 백제 제25대왕 무령왕은 누구일까요?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지석의 기록에서 보듯이 무령왕은 계묘년(523년)에 62세의 일기로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이것을 거꾸로 환산해 본다면, 그가 태어난 해가 462년임을 말해주는 것이며 이때 백제는 개로왕 8년에 해당하는 시기입니다. 한편 삼국사기에 무령왕에 대하여 모대왕의 둘째 아들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들을 종합해 볼 때, 무령왕은 동성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령왕이 태어났던 시기인 백제 개로왕대는 고구려의 세력다툼이 극심하던 때로서, 백제의 왕실은 항상 주변국의 침입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국력이 날로 쇠약해져 가던 백제는 475년에 급기야 백제국의 수도로 옮겨 재도약의 발판을 세우고자 하지만 왕실은 존립기반마저도 위협받고, 결국 동성왕도 자객에 의해 암살당하고 맙니다. 이렇듯 참담한 시기에 동성왕의 뒤를 이어 백제군의 제25대 왕으로 즉위한 사람이 바로 무렬왕입니다. 이때가 서기 501년이며, 당시 그의 나이은 40세였습니다.
비록 늦은 나이에 등극했지만,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경제의 기반이 되는 농업생산력을 극대화시키고, 귀족들의 반란을 잠재우고자 22담로제를 실시하여 왕권을 회복하는 등 극심한 환란에 빠져있던 정국을 수습하고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고구려의 침입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여 백제군의 안정을 도모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23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선정을 펼쳤던 무령왕은 삼국사기의 기록에 나타나 있듯이 백제의 인자관후한 성군으로 평가받을 만한 업적을 남긴 위대한 왕임에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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