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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명 : 한국의 파브르, 조선산 나비 총목록, 나비박사

by 최미화 2026. 11. 4.

일제 치하 혼란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주인 잃은 산하를 떠돌던 조선의 나비들에게 '이름(학명)과 주소(분포도)'를 찾아주는 데 일생을 헌신했던 석주명, 그는 우리 현대사 초창기의 몇 안 되는 별입니다. 특히 자연 과학 분야에서 세계에 떨친 그의 업적은 암흑기를 빛낸 눈부신 것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나비 박사'라 일컫습니다. 

 

한국의 파브르, 나비박사 석주명 

석 주 명 나비박사

 

석주명은 1908년 11월 13일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습니다. 13세인 1921년에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명문 숭실고보에 진학했지만, 이듬해 동맹휴학으로 숭실고보를 중퇴하고 개성의 송도고보로 옮겼습니다. 송도고보를 졸업한 그는 1926년 3월 일본에서 손꼽히는 농업전문학교인 가고시마 고등농림학교의 관문을 뚫은 유일한 조선인 학생으로서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졸업 후에는 모교인 송도중학교 생물교사로 부임하여 10여 년간 근무하면서 나비연구에만 전념하였습니다. 

 

 석주명은 한반도 전역을 훑으며 75만 마리의 나비를 채집했습니다. 희귀종을 쫓아 흑산도까지 배를 타기도 했습니다. 송도고보의 학생들에게는 방학만 되면 나비를 2백 마리씩 채집해오라는 숙제를 냈습니다. 얼마 전까지 초등학생들 방학숙제의 단골메뉴였던 곤충채집이 실은 그에게서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그와 학생들이 발로 뛴 덕분에 시간이 지날수록 송도고보의 박물관은 온갖 종류의 나비표본으로 가득 찼고 개성의 명소가 됐습니다. 그는 채집여행에서 돌아오면 밤낮없이 채집한 것을 모두 정리하여 지도에 표시하였는데, 훗날 그렇게 해서 탄생한 <한국산 나비 분포도>는 생물지리학상 세계 학계의 유례가 없는 불후의 명작으로 손꼽힙니다. 

 

 석주명이 나비연구를 시작할 즈음인 1930년대 초반에는 이미 한국산 나비에 대한 외국학자들의 연구가 50여년 정도나 축적돼 있었습니다. 당시까지 나비연구자들은 몇몇의 개체만을 채집하고 관찰해서 조금만 다른 형태가 발견되면 무조거 '신아종', '신변종'을 발견했다고 발표하고 바로 자기 이름을 붙인 새 학명을 명명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학명에 올리고 싶어 하는 학자들의 공명심이 새로운 종의 남발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석주명은 한국의 나비에 대한 외국인들의 연구 중 상당 부분이 잘못돼 있다고 생각하고, 외국학자들에게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많은 개체를 채집하여 기존에 등록된 종이나 아종나비가 단순한 개체변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그리고 종마다 개체변이의 범위를 밝혀 잘못된 학명을 제거해 나갔습니다. 

 

조선 나비 총목록

석주명은 10년 연구 끝에 1940년 <조선산 나비 총목록> 을 통해 일본 학자들이 같은 종인데도 다른 엉터리 학명을 붙여 844종이라고 분류한 한국나비를 248종으로 최종 분류함으로써 한국산 나비의 새로운 분류학 시대를 열었습니다. ,<조선 나비 총목록>은 한국인의 저서로는 처음으로 영국왕립도서관에 소장됐으며, 이로써 석주명은 세계적인 학자의 반열에 올라셨습니다. 

 

 그는 시간을 무척 아끼는 사람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연구실이 있는 박물관과 자신이 맡은 학교 교실 사이의 왕복 시간을 아끼려고 학교측에 요청해 학급을 박물관으로 옮기기까지 했으며 집에서는 서재와 안방을 연결하는 벨을 달아 볼 일이 있을 때만 벨을 누르고, 서재의 문을 꼭 걸어 잠갔습니다. 집에 방문한 손님은 10분 이상 만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신혼 초기부터 숱한 부부싸움을 벌였고 결국 1년 동안의 재판을 거쳐 4년 만에 파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미 국내외에 학자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던 그였기에 신문은 '꽃 모르는 나비학자'라며 연일 그의 사생활과 이혼 과정을 낱낱이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불행한 결혼 생활을 했던 석주명은 죽음마저도 비참했습니다. 석주명이 나비와 함께한 세월은 역사의 격동기였으나 그는 광주학생항일운동, 6.25전쟁 와중에서도 나비의 꿈만을 꾸었습니다. 전쟁 통에도 피난을 가지 않고 박물관의 나비 표본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전쟁 중에는 어딜 가나 생명보다 더 아끼던 지도 500장을 배낭에 넣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끝내 시대의 격량을 피해가지는 못하고 1950년 9월말 집중된 서울시내의 폭격으로 국립과학관이 불타는 바람에 그가 20여년간 수집한 그의 분신과도 같은 나비표본이 모두 한줌의 재로 변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비들이 모두 불탄 열흘 뒤 (1950.10.6), 과학관 재건을 위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로가던 그는 인민군으로 오인 받아 불의의 총격을 받고 숨졌습니다. 

 

나비밖에 모르는 사람

그가 총구를 겨누는 청년들에게 외친 최후의 한마디는 "나는 나비밖에 모르는 사람이아!" 였습니다. 나비를 쫓아 평생 산속을 헤매고 다녔던 것처럼 그는 나비들의 뒤를 쫓아 저 세상으로 훨훨 날아간 것입니다. 석주명! 그는 민족의 자긍심을 이깨우고 세계 속윽로 날아간 자랑스런 한국의 과학자였습니다. 

 

 석주명 박사님의 한국어로 새롭게 이름을 붙여 준 나비이름 중에는 신부나비, 도시처녀나비, 유리창나비, 수노랑나비, 부전나비 등이 있습니다. 

 

퀴즈: 10년 연구 끝에 1940년 일본 학자들이 같은 종인데도 다른 엉터리 학명을 붙여 844종이라고 분류한 한국나비를 248종으로 최종 분류함으로써 한국산 나비의 새로운 분류학 시대를  열며, 한국인의 저서로는 처음으로 영국왕립도서관에 소장됐으며,  이로써 석주명을 세계적인 학자의 반열에 올리게 된 책은? <조선산 나비 총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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