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고, 수원화성박물관 및 융릉과 건릉도 탐방해 본 소감을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수원화성박물관

수원화성박물관은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의 중심부에 자리 잡아 접근성이 용이하고 모형과 관련 유물의 전시를 통해 화성 축성에 대한 전반을 이해할 수 있게 건립되었습니다. 상설 전시공간으로 수원화성의 축성과정과 도시발전을 알려주는 화성축성실과 수원화성 축성에 참여한 인물과 정조의 8일간의 행차, 더불어 화성에 주둔하였던 장용영의 모습을 보여주는 화성문화실이 있습니다.
화성문화실은 특히 초대 화성유수이자 화성성역 총리대신어었던 문숙공 번암 채제공 선생님의 초상화(보물 1477호)를 비롯하여 정조대왕께서 하사하신 비밀어찰을 비롯한 많은 유물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이는 채제공 선생님의 6대 후손이신 채호석 선생님의 기증으로 가능했던 것입니다.
화성성역의궤
조선 시대에는 나라에 큰 행사가 있으면, 그 내용을 글과 그림으로 자세히 기록해서 다음에 참고하도록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책을 '의궤'라 하는데, <화성성역의궤>는 조선의 의궤 제작 전통에 따라 화성공사의 전 과정을 기록해 놓은 책으로 순조 1년에 발간되었습니다. 10권으로 간행된 이 책에는 공사 일정, 공사 책임자들의 인적 사항, 각 건물에 대한 설명과 공사에 사용한 기구들과 함께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오고 간 각종 공문서들과 왕의 명령, 공사를 하면서 치른 각종 의식, 성을 만드는데 들어간 비용까지 아주 꼼꼼하게 기록해 두었습니다.
거중기 : 거중기는 정약용(1762 ~ 1836) 이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하여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릴 수 있도록 고안한 장치입니다. 지금의 기중기와 비슷한 도구입니다. 위와 아래에 각각 4개씩의 도르래를 연결한 후 그 끈을 물레에 감아 당기면 무거운 물건도 가볍게 들어 올릴 수 있어 수원화성 축성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녹로 : 긴 장대 끝에 도르래를 달고 끈을 얼레에 연결하여 돌을 높이 들어 올리는 데 사용하던 도구입니다. 높이가 11m에 이르며 오늘날의 크레인과 같은 기능을 합니다. 수원화성 축성 때 2개를 만들어 높은 성벽을 쌓는 데 사용하였으며 이후 각종 궁궐의 공사에도 활용되었습니다.
2. 추존 장조와 헌경의황후의 능 융릉
사적 제 206호, 장조와 그의 비 현경왕후의 능입니다. 근처에 위치한 건릉과 함께 사적 제20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장조는 1735년(영조 11) 창경궁에서 탄생해 그 이듬해에 세자에 책봉되고, 1762년 28세 때 창경궁에서 죽었는데, 영조가 뒤에 사도라는 시호를 내렸습니다. 그 뒤 정조가 즉위하자 장헌세자라 하고 고종 때 장조로 추존되었다가 1899년 의황제로 다시 추존되었습니다. 헌경왕후는 영의정 홍봉한의 딸로서 1744년 세자빈에 간택되었다가 세자가 죽은 뒤 1762년 혜빈의 호를 받았습니다. 1776년(정도 즉위년) 아들 정조가 즉위하자 궁호가 혜경으로 올랐습니다. 1815년 (순조 15) 80세로 창경궁에서 죽었는데, 1899년 의황후로 추존되었습니다.
융릉은 원래 경기도 양주시의 배봉산에 있었던 영우원을 수원의 옛 도읍 뒤의 화산으로 옮겨 현륭원이라 하였습니다. 정조는 현륭원을 마련할 때 온갖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그 결과 조선시대의 어느 원보다도 후하고 창의적인 상설을 하였습니다. 능상설은 병석을 두르고 인석은 화뢰형으로 하고 문무석인을 세웠습니다. 장명등은 전기의 8각 장명등과 숙종, 영조, 연간에 등장한 4각 장명등의 양식을 합한 새로운 양식으로 만들어 세웠습니다. 석인도 예전에는 가슴까지 파묻혀 있던 목이 위로 나와 있어 시원한 분위기를 나타내는 등 조각 수법이 사실적입니다. 능의 뒤에는 곡장을 들렸습니다. 19세기 이후의 능석물 양식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3. 조선 22대 정조와 효의선황후의 능 건릉
조선 제 22대 왕 정조(1752 ~ 1800, 재위 1776~ 1800)와 부인 효의왕후 김 씨 (1753 ~ 1821)를 합장한 무덤입니다.
정조의 아버지로 사후에 추존된 장조(사도세자)와 현경왕후 홍씨의 합장묘인 융릉과 함께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20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건릉은 봉분 안에 2실을 갖춘 합장릉입니다. 봉분을 빙 둘러 12칸의 난간석이 에워싸고 있으며, 난간석의 기둥에는 12지 방위가 문자로 새겨졌습니다. 병풍석은 설치되지 않았습니다. 봉분 안에 상석 1좌가 있고, 그 양측에 망주석 1쌍이 서 있습니다. 봉분 주위로 석양. 석호가 각 2쌍을 교대로 배치하였고, 봉분 바깥쪽으로 3면의 곡장( 나지막한 담)을 둘렀습니다.
봉분 아랫단에 문인석.석마 각 1쌍과 장명등 1좌가 있으며, 그 아랫단에는 무인석. 석마 각 1쌍이 있습니다. 금관조복을 입고 있는 문인석은 사실적인 조각기법이 돋보입니다. 능이 조성된 언덕 아래에 정자각과 1992년 복원한 비각이 있으며, 정자각 남쪽 참도가 시작되는 곳에 홍살문이 있습니다. 홍살문에서 정자각에 이르는 길을 참도라 하는데 융릉과 마찬가지로 정자각까지 참도 좌우 양측에 박석을 깔아놓은 것이 특징적입니다. 2002년 정자각 서쪽에 수라간을 복원하였으며, 능역 남쪽 대로변에 재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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