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륵박물관 : 가야금을 창제한 약성 우륵과 관련된 자료를 발굴, 수집, 보존, 전시하여 국민들이 우륵과 가야금의 세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건립한 전국 유일의 우륵과 가야금 테마 박물관입니다. 맑고 깨끗한 가야금의 고장 고령에서 우리 민족 고유 악기인 가야금과 가야금 창시자인 우륵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살아있는 교육의 장이며, 잊혀져 가는 정통음악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1. 가야금의 역사적 유래
음악 시간에 가야금에 대해 배웠나요? 우리나라 고유의 악기인 가야금을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 아나요? 바로 우륵이라는 가야의 악사가 왕의 명령으로 만든 악기가 가야금입니다. 가야금은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에 의하면 가야국의 가실왕이 만들었다고 하며, '가야고'라고도 합니다. 가야금의 울림통은 오동나무이고 12개의 현은 명주실로 만듭니다. 현을 지탱하는 나무괘는 기러기발처럼 생겼다고 해서 안족(雁足)이라 부릅니다. 가야금은 맨 손가락으로 타는데 왼손은 안족 뒤편 줄 위에 놓고 줄을 흔들고 누르며 오른손은 줄을 뜯거나 밀고 퉁겨서 소리 냅니다.
원래 전해오는 가야금의 풍류가야금(일명 법금(法琴))이라 불러 민속악에 사용하는 산조가야금과 구별합니다. 풍류가야금의 끝부분은 양의 귀 같이 삐죽 나와 있다고 해서 양이두(羊耳頭)라고 하고 산조가야금의 끝부분은 새의 꼬리 같다 하여 봉미(鳳尾)라고 합니다.
악성우륵은 우리나라 3대 악성 중의 한 분으로 대가야 성혈현 출신입니다. 가실왕의 명을 받아 우륵박물관이 있는 정정골에서 가야금을 창제하고 작고, 연주하였으나 현재는 가야금 12곡의 이름만 전해오고 악보는 알 수 없습니다. 대가야가 멸망하기 전에 신라에 망명하여 신라음악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2. 가야연맹
가야는 삼국 시대에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존재했던 국가였지만 역사에서 조용히 사라져 버린 국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책을 보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 시대'라는 말은 나와도 '사국 시대'라는 표현은 쓰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왜 가야를 제외시켰을까요? 가야흔 하나의 나라가 아니라 총 6개의 연맹 왕국으로 이루어진 나라였습니다.
가야는 성산가야, 대가야, 아라가야, 금관가야, 고령가야, 소가야의 6개 연맹 왕국으로 이루어졌었고, 이 중 대가야는 지금의 고령 지방에, 금관가야는 김해 지방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가야는 처음에는 김해의 금관가야가, 나중에는 고령의 대가야가 각각 가야 연맹을 이끌어 갔습니다. 그런데 가야는 백제와 신라의 가운데 위치하여 두 나라 틈에 낀 채 어느 곳으로도 뻗어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백제는 장수왕에게 한강을 뺏기고 난 후 남쪽에 위치했던 가야를 계속 압박했고, 신라 역시 영토 확장을 위해 주변의 가야를 수시로 넘보고 있었거든요.
당시 백제와 신라는 중앙 집권 체제를 마련해서 국력이 강성했던데 반해, 가야는 여전히 연맹 왕국 단계로 강력한 왕권이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에 두 나라에 대항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결국 신라 법흥왕 때 가야 연맹체의 중심이었던 금관가야가 무너졌고, 그로부터 30년 후에는 신라 진흥왕에 의해 대가야까지 멸망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500여 년 동안 지속된 가야는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되는 것이죠. 비록 가야는 멸망했지만, 가야의 우수한 문화는 신라레 그대로 흡수되었습니다.
그래서 신라의 유명한 인물들 중에는 가야 사람이 많은데 대표적인 인물로 김유신, 우륵 등이 있습니다. 비록 중앙집권적 국가로 발전하지 못하고 멸망한 가야였지만 가야가 자리 잡은 지역은 예전의 변한 땅으로 품질 좋은 철이 많이 나기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낙동강 유역의 금관가야는 뱃길을 이용해서 중국과 일본에 철을 수출했습니다. 금관가야는 제주도에 무역 기지를 건설하고 일본 규슈까지 배를 타고 가서 철을 팔았지요. 이렇게 일본뿐 아니라 중곡, 낙랑에까지 철을 수출해서 경제적으로 부유해진 가야는 이를 바탕으로 높은 수준의 문화를 이루었으며, 당시에 가야 연맹 왕국의 문화 수준은 신라보다도 훨씬 높았다고 합니다.
3. 가야의 건국신화
기원 전후부터 서기 562년까지 주로 낙동강 하류 일대에서 번성했던 소규모 국가들을 총칭해 부르는 이름이 가야입니다. 구체적인 기록이 전하지 않아 '신비의 왕국'으로 불리는 연맹체 국가입니다. 각 기록인 가라, 가락, 구야, 임나 등으로 전해 오고 있습니다. 마한. 진한. 변한 삼한시대에 변한의 12국에서 발전한 6가야는 또는 7 가야를 말합니다.
고령 지역의 대가야, 김해의 금관가야, 함안의 아라가야, 함창의 고령가야, 성주의 성산가야, 고성의 소가야, 창녕의 비화가야가 그 나라들입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과 <삼국사기>, <삼국유사>, <일본서기>등에 일부 기록이 전해 옵니다.
두 가지 건국신화, 후기 가야시대의 중심국인 대가야
두 가지의 가야 건국신화가 전해집니다. 하나는 '가야산에 살던 산신 정견모주와 하늘에서 내려온 천신 이비가 사이에 두 아이를 낳았는데, 큰아들은 대가야의 시조 이진아시왕이 됐고,둘째 아들은 금관가야의 시조인 수로왕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하나는 '하늘에서 6개의 커다란 알이 내려왔는데, 가장 먼저 깨어난 동자가 금관가야의 수로왕이 되었고 나머지 5개의 알에서 나온 동자들은 5 가야의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앞의 이야기는 신라 말 최치원의 <석이정전>에 나온 이야기를 인용해 실은 조선 초의 <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대가야 중심의 건국신화이고, 뒤의 이야기는 고려 중기에 나온 <가락국기> 내용을 고려 후기에 일연이 인용해 실은 <삼국유사>의 금관가야 중심의 건국신화입니다. 김해 지역에서 번성했던 금관가야는 서기 400년 무렵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공격을 받은 뒤 쇠퇴하기 시작해 서기 532년 신라(법흥왕 19년)에 항복합니다. 5~6세기, 후반기 가야의 중심국으로 위세를 떨치던 대가야는 백제. 왜 연합군과 신라를 공격하다 패한 뒤, 결국 562년(진흥왕) 신라 이사부가 이끄는 군대의 공격을 받아 항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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