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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 죽음으로서 절의를 지킨 충신, 임고서원

by 최미화 2026. 10. 13.

고려 충신으로 충절을 지킨 포은 정몽주 선생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1. 죽음으로서 절의를 지킨 정몽주

 고려의 정치가이며 학자입니다. 경상도 영천에서 태어났습니다. 초명은 몽란, 몽룡, 자는 달가, 호는 포은입니다. 그의 어머니가 그를 임신했을 때 난초 화분을 품에 안고 왔다가 땅에 떨어뜨리는 꿈에 놀라 깨어나 그를 낳았기 때문에 지은 이름입니다. 또 정몽주가 아홉 살 때 어머니가 낮에 검은 용이 뜰 가운데 있는 배나무로 올라가는 꿈을 꾸다 깨어나 밖으로 나가 보니 그가 올라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몽룡이라고 고쳤으며, 그가 관례를 치를 무렵 아버지의 꿈에 '중국의 학자 주공선생이 나타나 아들이 장차 큰 인물이 될 것이다.'라고 예언하여 몽주로 고쳤습니다. 

 

 정몽주는 태어나면서부터 재주가 남달랐고, 어깨 위에 북두칠성 모양의 검은 점이 일곱 개나 있었다고 합니다. 포은 정몽주선생은 성리학이 고려와 조선에 뿌리내리는데 큰 역할을 함으로 동방이학의 존중받는 학자입니다. 고려 말기 새로운 이념으로서 주자학을 확립한 삼은 중의 한 사람으로 불교이념에 대치되는 주자학의 연구와 보급에 힘썼으나, 온건개량파의 입장을 견지하여, 조준, 정도전 등의 급진적인 개혁에는 반대하였습니다. 

 

                                                                       성리학에 뛰어나 동방이학의 시조로 추앙되었으며, 주자가례를 따라 사회윤리와 도덕의 합리화를 기하였습니다. 5부 학당과 향교를 세워 학문을 진흥하는 한편, 대명률을 참작, 신율을 간행하여 법질서를 확립하고자 하였습니다. 외교정책과 군사정책에도 관여하여 기울어지는 국운을 바로 잡으려 노력했으나 이성계의 신흥 세력에 꺾였습니다. 새 왕조를 세우려는 신흥 세력으로부터 참여의 권유를 숱하게 받았으나 이를 완강히 거절, 선죽교에서 이방원이 보낸 자객에게 피살됨으로써 자신의 유학적 이념대로 고려왕조와 운명을 같이 했습니다. 문집으로 [포은집]이 있고 그의 글은 충성을 읊은 [단심가]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2. 하여가, 단심가

이런 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 년까지 누리리라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고려의 마지막 충신 정몽주와 조선 건국을 꿈꾸던 이방원 사이에는 역사의 흐름을 바꾼 유명한 시조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고려 말,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을 계기로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고 새로운 왕조를 세우려 하였습니다. 그의 아들 이방원은 아버지의 뜻에 동조하며 조선건국을 추진했지만, 고려 왕조를 지키려는 정몽주는 끝까지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이방원은 정몽주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하여가]를 지었습니다. 이 시조에는 고려 왕조가 무너지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더라도 함께 어울려 살아가자는 회유의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몽주는 이에 굴하지 않고 [단심가]로 답했습니다. 자신의 몸이 백 번 꺾이고 뼈가 가루가 되어라도 고려를 향한 충성심만은 변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결국 정몽주는 1392년 선죽교에서 이방원 측 인물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 때 정몽주는 말을 거꾸로 타고 선죽교를 향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고려왕조의 몰락과 조선 건국이라는 역사적 전환기를 상징하는 이야기로 전해집니다. [하여가]와 [단심가]는 단순한 두 편의 시조가 아닙니다. 새로운 시대를 열려는 사람과 무너져 가는 나라를 끝까지 지키려는 사람의 신념이 맞부딪친 역사의 기록입니다. 오늘날에도 두 시조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용기와 충절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3. 임고 서원

선죽교와 임고서원

 

2025년 5월,  저는 고려 말 나라의 운명이 위기에 처했을 때 끝까지 절의를 지키며 충절의 상징으로 남은 포은 정몽주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임고서원을 탐방했습니다. 경상북도 영천에 위치한 임고서원은  조선명종 8년 (1553)에 정몽주 선생의 고향 사람들에 의해 건립되었습니다. 이후 여러 차례의 소실과 중건을 거쳐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서원에는 정몽주 선생의 학문과 충절을 기리는 유적이 남아 있으며, 임고서원 소장 전적과 정몽주 영정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서원 앞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수령 약 500년의 거대한 은행나무 입니다. 높이 약 20m, 가슴높이의 줄기둘레가 5.95m에 이르는 이 노거수는 오랜 세월 동안 임이고서원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온 살아 있는 증인과도 같습니다. 굵은 줄기와 넓게 뻗은 가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수백 년의 세월과 그 속에 깃든 선조들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이 은행나무에는 흥미로운 전설도 전해집니다. 정성껏 음식을 차리거나 맑은 정화수를 올리고 성의껏 기도하면 자녀를 얻거나 병이 낫는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반대로 나무에 해를 끼치는 사람은 큰 벌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는 나무를 신성하게 여기고 소중히 보호하려 했던 옛사람들의 마음을 보여 줍니다.  

 

 임고서원 탐방은 단순히 오래된 서원을 둘러보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정몽주 선생의 [단심가]에 담긴 변치 않는 충절과 신념을 되새기고,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켜온 은행 나무를 통해 역사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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