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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리 솥바위 : 의령군 정암마을, 현실이 된 전설, 솥바위 지형

by 최미화 2026. 11. 2.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홍의 장군' 곽재우 장군의 생가를 탐방하기 위해 의령을 가는 길에 부자가 되는 바위가 있다는 의령군 의령읍 정암리 정암마을의 솥바위를 찾아가보았습니다. 

부자가 되는 바위 - 정암리 솥바위

의령군 의령읍 정암리 정암마을

 의령읍으로 들어가는 관문을 지나 정암교 바로 우측에 촌동네 치고는 다소 큰 마을이 보입니다. 이 마을은 '정암마을'이라는 이름보다는 임진왜란 때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왜군을 무찌른 홍의장군 '곽재우 장군'의 승전지인 '정양진'으로 더 유명합니다. 이같이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은 마을 앞에는 천기가 서린 곳이 있어 유명세를 더하고 있습니다. 의령군과 함안군을 경계로 흐르는 남강 가운데 4m 높이로 솟아 있는 솥처럼 생긴 바위입니다. 바위 모양새가 '솥'을 닮았다 해서 '솥바위'라고 불려집니다. 마을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습니다.   

 

 

솥바위에 서린 천기

 남강 물위에 드러나 있는 부분은 솥뚜껑을 닮았고, 물아래는 세 개의  발이 받치고 있습니다. 세 개의 발은 남쪽, 북쪽, 동남쪽을 향하고 있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나 확인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의령군 충익사관리사무소 윤재환 소장은 "몇 해 전 모 방송국에서 실제로 3개의 다리가 존재하는지, 다리 방향이 남쪽, 북쪽, 동남쪽을 보고 있는지 수중탐사를 했으나 물이 탁해 끝내 확인하지 못하고 철수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마 천기가 서린 솥바위가 자신의 신비를 확인하려 한 인간에게 이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솥 정(鼎)은 세 갈래의 발이 달린 솥의 모양을 본 뜬 글자입니다. 원래 중국 고대국가에서는 세발 달린 솥을 왕의 권위를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솥바위를 '존귀함과 부귀함'을 나타내는 바위라고 해석하는 이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속설에 따르면 솥(鼎)이란 비록 작은 그릇이지만 왕(王)의 보물로 귀중한 기물로 여겼고, 솥밭 3개는 삼공(三公), 삼정승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솥바위는 부의 기운을 간직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설이 현실이 되다! 솥바위의 3대 재벌 창업부 연관성

 솥바위 인근 주민들 사이에서는 예로부터 솥뚜껑을 받치고 있는 3개 다리의 방향으로 반경 20리(8km) 이내에 큰 부자 3명이 난다는 예언이 전해져 왔습니다. 조선말 한 도인이 이 솥바위에 않아 머지 않아 이 바위를 중심으로 국부 3명이 태어난다는 예언을 했다고 합니다. 이곳 마을 사람들은 섣달 그믐날이나 가뭄이 계속될 때는 이 바위에 왼새끼줄(금줄)을 치고는 동신제, 용왕제, 기우제 등을 올리기도 했고 집안에 우환이 있는 사람들은 한밤중에 촛불을 밝혀 놓고 무당굿을 하거나 비손을 했던 곳이었으며 옛 시절에는 함부로 올라가지 못하게 말렸던 금기의 대상인 바위섬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예언 탓인지 공교롭게도 재벌 창업주 3명이 솥바위 근처에서 태어났습니다. 솥바위를 중심으로 반경 8km 에 부호가 태어난다는 것이 맞아떨어진 것입니다. 의령 정곡면 중교리에서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이 태어나 성장했고, LG그룹 창업자 구인회 회장은 솥바위에서 7km, 효성그룹을 창업한 조홍제 회장은 5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모두 인근의 의령, 진주, 함안 출생입니다. 전설이 현실로 된 것입니다. 또 풍수지리에서 솥바위를 별자리로 보는 이도 있습니다. 

 

3대 재벌 창업주들은 어릴 때 솥바위의 전설을 들으면서 성장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때문이지 이들이 세운 기업에 별(星) 이름이 들어갑니다. 삼성, 금성, 효성 등 기업 이름에 모두 별(星) 자가 넣어져 있는 것은 우연이라고 치부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게다가 삼성 이병철 회장의 호는 호암이고, LG 구인회 회장의 호는 연암입니다. 이들 호에 바위 암자가 들어가 있는 것도 솥바위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합니다. 

 

솥바위 지형

 솥바위의 주변 지형은 대부분 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북쪽으로 용덕천, 서쪽으로 의령천, 동쪽으로 남강이 흐릅니다. 자연마을로는 백야, 정암 등이 있습니다. 백야는 청암의 서쪽에 있는 마을이며 정암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남강에 떠 있는 솥바위의 형세는 과거와 현재 모습이 크게 다릅니다. 과거 솥바위의 양쪽 뭍과의 거리는 오른쪽과 왼쪽 간격이 거의 비승하였습니다. 지금은 솥바위를 중심으로 오른쪽과 왼쪽 뭍과의 간격이 큰 격차를 보이고 있습니다. 왼쪽 뭍(정암마을)은 솥바위에 거의 접근해 있습니다. 과거 정암 마을은 매년 비가 많이 내리게 되면 남강의 물이 범람하게 되어 상습적으로 침수피해를 입는 상태였습니다. 

 

 1970년 이후 남강댐이 조성되면서 침수는 피해왔으나 댐의 수위조절을 위해서 대량 방류할 때에는 마을 침수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침수를 막기 위하여 2000년경에 마을 밖으로 둑을 하나 더 만들었습니다. 이때 만든 둑으로 인해 솥바위는 거의 뭍에 붙게 됐습니다. 따라서 현재에는 솥바위의 옛날 경관은 찾기 어렵습니다. 

 

한 때 사라질 위기 

솥바위는 일제에 의해 교각 받침이 될 뻔 한 역사도 안고 있습니다. 1930년 초 일제는 정암교를 설계하면서 솥바위 위에 다릿발을 놓으려 했습니다. 수중 자연암석인 솥바위를 활용하면 다릿발을 줄일 수 있고 교량이 튼튼해진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런데 일본을 대표하는 경관파 교량 엔지니어인 가바시마 마사요시 씨가 1931년 정암교 건설 예정지를 찾아 주변 경관을 관찰한 뒤 정암교의 위치를 솥바위에서 위쪽으로 40 ~ 50m 떨어지게 설계를 변경했다고 합니다. '솥바위를 보존하고, 다리에서 정암을 바라볼 수 있게, 또 솥바위와 다리가 경관적으로 조화되게' 설계 변경을 유도한 것입니다. 가바시마 마사요시 씨 때문에 솥바위는 사라질 위기를 겨우 면했습니다.  

정 암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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