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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선 :과학기술자, 진포/관음포 대첩, 최무선 과학관

by 최미화 2026. 10. 12.

 최무선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화약을 만들고 화약 무기를 개발한 고려 말의 장군이자 과학자입니다. 당시 첨단 기술이었던 화약제조법을 오랜 연구와 노력 끝에 자체 개발을 해냈으며, 화통도감을 설치하여 화학무기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데에도 앞장섰습니다. 당시 최무선이 개발하고 제작한 화약과 무기는 왜구 격퇴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정치적, 사회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1. 우리나라 최초로 화약무기 개발자, 최무선의 생애와 업적

 최무선(崔武宣, 1325 ~ 1395)은 고려 말기의 과학기술자이자 무기 개발자로,  우리나라 처음으로 화약 제조법을 알아내고 화약 무기를 개발한 인물입니다. 그는 경상북도 영천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과학기술과 군사 분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당시 고려는 왜구의 잦은 침입으로 백성들이 큰 피해를 입고 있었지만, 화약과 화약 무기를 자체적으로 만들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고려 말기에 화약제조법은 오로지 중국만이 가진 첨단 군사기술이자 국가기밀이었습니다. 최무선은 중국인 기술자 이원에게서 화약의 주원료인 염초 제조 핵심기술을 알아내고, 숱한 실험을 거쳐 염초를 흙에서 추출하는 데 성공해 마침내 화약 제조기술을 완성했습니다. 

 화통도감을 세워 첨단 화약무기들을 연구 개발하여 화약 개발에 성공한 후, 최무선은 화약과 화약무기 제조를 정부에 적극 건의하여 1377년 정부 공식기관인 화통도감을 발족시켰습니다. 이후 최무선의 주도로 화통도감에서는 대장군, 이장군, 화전, 주화 등 20여 가지의 각종 첨단 화약무기를 개발해 냈습니다. 

 화약 제조법과 화포 제작기술을 책으로 편찬한 최무선은 자체 개발한 화약 제조법과 화포 제작기술을 <화약수련법>과 <화포법>으로 편찬했습니다. 이 책들은 현재 전해지지 않지만, 그가 개발한 화약 제조법과 화포 제작기술은 아들 최해산에게 전수됐고, 최해산은 아버지의 기술을 계승 발전시켜 조선 초기에 각종 화약과 신무기를 개발했습니다. 

 

2. 왜구를 물리친 진포대첩/ 관음포대첩

[진포대첩]

1380년 8월 왜구는 500여 척의 전선을 이끌고 전라도 진포(현 충청남도 서천군)를 거점으로 삼아 내륙에 침입했습니다. 고려 조정에서는 최무선의 화기를 시험해 볼 만한 기회라며 최무선을 부원수로 임명해 참전토록 했습니다. 원수 나세를 필두로 심덕부와 최무선이 지휘하는 고려군의 수군은 왜선에 비해 5분의 1밖에 안 되는 군선 100여 척을 이끌고 출정하였습니다. 왜군은 군선과 군선을 연결하여 거대한 해상기지를 형성하여 위협적인 전세를 펼쳤고, 고려수군은 이 시기 이전에는 왜선의 위세에 눌려 감히 근접할 엄두도 못 냈겠지만 화포로 무장한 덕에 초대형 선단을 향해 대규모 화포공격을 가해 곧 적선 500척을 모두 불살랐습니다. 왜군은 내륙으로 퇴각하였으나, 이를 추격한 이성계에 의해 지리산 일대에서 섬멸되었습니다. 진포대첩은 고려군이 자체 제작한 화기로 거둔 승리였고, 군선에 화포를 장착하여 최초로 함포공격이 감행된 해상전투였으며, 한 차원 높은 함포전술이 가미되어 고려가 해상방어를 적극화하는 새로운 변화를 이뤄냈습니다. 

 

[관음포대첩]

  고려 말인 1383년(우왕 9) 5월 정지의 함대가 남해현 관음포 앞바다에서 왜구를 크게 무찌른 해전으로 '남해대첩'이라고도 합니다. 3년 전인 1380년 진포에서 왜선 500척이 격침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왜구는 120여 척의 군선을 이끌고 침입해 앞서 함포(현 마산)를 공격하였습니다. 급보를 받은 해도원수 정지는 나주의 목포에서 잔산 47척을 이끌고 경상도로 급히 항진하였고 왜구는 정예병 군사 140명씩을 배치한 큰 군선 20척을 앞세우고 공격해 왔습니다. 정지는 앞서서 공격하는 배를 격침시킨 다음 화포를 사용하여 그 가운데  17척을 대파하였습니다. 

 당시 고려군의 화포를 운영하는 책임자는 최무선이었는데, 움직이고 있는 적선에 화포를 정확하게 정중시킨 해전이었습니다. 이 싸움은 승리를 거둔 뒤에 정지가 "내가 일찍이 왜적을 많이 격파하였으나 오늘같이 통쾌한 적은 없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왜선을 철저히 격파한 해전이었습니다. 관음포 대첩은 왜구들이 고려 수군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하고 세계 해전사에서 함포로 적을 물리친 전투라는 큰 의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전투는 최영의 흥산대첩, 나세 등의 진포대첩, 이성계의 황산대첩과 함께 왜구의 세력을 크게 약화시킨 승전이었으며, 관음포대첩으로 자신감을 가진 고려군은 대마도정벌을 추진하였습니다. 

 

3. 최무선 과학관을 가다.

어릴 적 과학자가 되고 싶었던 저는 2025년 5월 최무선 과학관을 탐방했습니다. 최무선 과학관은 고려 말 화약을 발명해 왜구를 무찌르는데 기여한 최무선 장군의 업적과 과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경상북도 영천시가 건립했습니다. 

 과학관 내부에는 기획 전시실. 상설 전시실. 전통 과학 체험실. 시청각실 등 각종 전시물과 체험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전통과 현대를 배경으로 한 연화 체험 [불꽃놀이], 화포로 왜구를 무찌르는 화포 체험, 조선 시대 선박과 화차, 총통을 직접 조립하며 체험할 수 있는 체험 키트가 들어서는 등 체험을 통한 전통 과학의 이해와 학습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또 야외전시실에는 전차와 장갑차 5대가 비치되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영천시는 비행기를 비롯한 화포, 미사일 등 군 퇴역 장비를 야외에 전시해 전통 과학에서 시작된 호국 정신을 현대에 접목시켜 재조명할 방침입니다. 

 

 최무선은 1395년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화약 기술은 아들 최해산에게 이어졌습니다. 또한 그가 남긴 화약 무기 개발의 성과는 조선 시댁 군사 기술 발전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최무선은 과학기술을 국가와 백성을 지키는 데 활용한 선구적인 과학자로, 우리나나 과학기술사와 국방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어린 최무선이 화약개발에 꿈을 꾸며 과학자로 성장하는 과정을 소개한 무선이의 진포대첩 영상을 보면서 가슴 뿌듯함을 느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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