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과 함께 읽는 시 한 편
논술 수업을 하며 아이들에게 시 한 편을 건네는 순간이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고 싶은 작품은 김용택 시인의 동시집 『콩, 너는 죽었다』입니다. 제목부터 아이들의 웃음을 터뜨리는 이 작품은, 가을철 콩타작마당에서 벌어지는 소란스럽고도 정겨운 풍경을 담고 있습니다.
콩깍지를 두드리면 콩알들이 사방으로 튀어 나가는데, 시인은 이 모습을 마치 술래잡기처럼, 혹은 도망가는 콩과 그것을 잡으려는 사람들의 숨바꼭질처럼 그려냅니다. 통통 튀어 담 밑으로 굴러가고, 뜨락으로 흩어지고, 마당을 가로질러 달아나는 콩알 하나하나에 생명을 불어넣은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아이들에게 이 시를 읽어주면 저마다 "콩이 진짜 도망가는 것 같아요"라며 눈을 반짝입니다. 콩이 구멍에 들어가면 다시 나오지 못하니까 콩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콩 너 잡히면 죽어.'라는 의미가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콩이 쥐구멍에 들어가면 쥐가 콩을 먹어 버릴 테니까 죽었다고 표현한 것 같기도 하고 콩이 쥐구멍으로 들어간 것을 콩이 도망간 것처럼 생각해서 장난스럽게 말한 것도 같습니다.
김용택 시인은 아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농촌 마을의 모습을 4부로 나누어 실었습니다. 제 1부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친화적인 태도로 그리는 한편 자연을 훼손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드러나 있습니다. 제 2부에서는 따뜻한 정을 가지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그렸습니다. 제 3부에서는 가난하지만 따뜻하게 살아가는 가족을의 모습과 힘들지만 꿋꿋하게 우리 농촌을 이끌어 온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고, 4부에스는 외롭게 살아가지만 따뜻한 사랑을 나눠 주는 할머니의 정을 듬뿍 그려 놓았습니다. '콩 타작'은 콩을 수확하는 장면인데 '콩 타작' 할 때 콩들이 쥐구멍으로 쏙 들어가는 상황이 재미있게 표현한 시의 제목이 책 전체의 제목이 된 거랍니다. 딱딱한 사물에 움직임과 감정을 불어넣는 상상력, 그것이 바로 이 시가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콩타작이라는 풍경이 품고 있는 것
콩타작은 단순한 농사일이 아닙니다. 도리깨로 콩깍지를 두드리는 소리, 마당 가득 흩어지는 콩알을 온 가족이 함께 주워 담는 시간, 그 안에는 공동체의 노동과 웃음이 함께 녹아 있습니다. 예전에는 마을 사람들이 서로의 집 타작을 도와가며 일했고, 아이들은 어른들 곁에서 콩을 줍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놀이처럼 그 일에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런 풍경을 실제로 본 아이가 몇이나 될까요. 농촌 인구는 빠르게 줄고 있고, 남아 있는 농가 역시 고령화가 심각한 수준입니다. 손으로 하던 타작은 기계로 대체된 지 오래고, 마당에 콩알이 튀어 다니는 모습도, 온 식구가 둘러앉아 콩을 고르던 저녁 풍경도 이제는 흔한 일이 아닙니다. 젊은 세대가 도시로 떠나면서 농촌 마을은 빈집이 늘고, 농사를 지을 손도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김용택 시인의 시는 단순한 동시를 넘어, 사라져 가는 농촌 공동체의 정겨운 한 장면을 기록한 소중한 자료이기도 합니다.
아이들과 이 시를 함께 읽으면서 저는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너희가 살고 있는 동네에는 이런 풍경이 남아 있니?"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 대부분은 고개를 젓습니다. 그래서 이 시는 아이들에게 단순한 재미를 넘어,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자연스럽게 생각해보게 만드는 좋은 매개가 됩니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
이 작품을 쓴 김용택 시인은 1948년 전라북도 임실군 덕치면 진메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순창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스물한 살에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고, 2008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자신의 모교이기도 한 임실덕치초등학교에서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자신이 나고 자란 마을 앞을 흐르는 섬진강을 배경으로 한 연작시로 널리 알려지면서 '섬진강 시인'이라는 별칭을 얻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시인이기 이전에 평생 아이들과 함께한 교사였다는 사실입니다. 교실에서 아이들의 순수한 언어와 시선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경험이, 콩알 하나에도 생명을 불어넣는 그의 동시 세계를 만들어낸 밑거름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봅니다. 실제로 그는 아이들의 글을 문학 작품으로 다듬어내는 작업에도 오랜 시간 공을 들였습니다. 자연과 농촌, 그리고 아이들이라는 세 가지 축이 그의 문학 세계를 든든하게 받치고 있는 셈입니다.
논술 수업에서 이 시를 다루는 이유
27년 동안 아이들과 책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어 오면서 느낀 것은, 좋은 시 한 편이 백 마디 설명보다 더 깊은 생각을 이끌어낸다는 사실입니다. 『콩, 너는 죽었다』는 짧고 유쾌하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사라져가는 농촌의 풍경, 공동체의 노동, 그리고 사물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까지, 한 편의 시 안에 여러 겹의 이야기가 겹쳐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이 시를 소개할 때는 먼저 콩타작이라는 낯선 노동의 장면을 그림이나 사진으로 함께 보여주고, 그다음 시를 소리 내어 읽으며 콩알이 되어 도망가는 상상을 해보게 합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 동네에서 사라진 것, 혹은 사라져가는 풍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아이들은 단순히 재미있는 시 한 편을 읽은 것을 넘어, 농촌과 도시, 과거와 현재를 잇는 생각의 다리를 스스로 놓게 됩니다.
시 한 편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농촌의 현실과 한 시인의 삶으로까지 이어지는 경험, 그것이 바로 아이들과 책을 읽는 즐거움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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