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선생은 우리나라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평생을 바친 위대한 정치가이자 지도자입니다.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역사의 한가운데로 뛰어든 그는 모든 동포들을 민족의 이름으로 통일시킨 독립운동의 상징이었습니다. 광복 후 고국으로 돌아와 통일을 위해 헌신하다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기까지 김구 선생의 일생을 들여다봅시다. 지지 않는 민족의 별이 되신 김구 선생이 오늘날 우리에게 남긴 과제는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김구> 사회운동가
김구 선생은 일제강점기 동안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대표적인 사회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입니다. 1876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나라의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성장하였습니다. 명성황후 시해 이후 일본에 대한 분노로 의병 활동에 참여했고, 이후 독립운동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그는 일본 장교를 처단한 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지만, 탈옥 후 더욱 굳은 의지로 항일 운동을 이어 갔습니다. 중국 상하이로 망명한 뒤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주석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이끌었습니다. 특히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여 이봉창과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지원하며 세계에 한국 독립 의지를 알렸습니다.
김구는 단순한 독립 뿐 아니라, 도덕성과 문화가 살아 있는 나라를 꿈꾸었습니다. 그의 저서 <백범일지>에는 이러한 신념이 잘 담겨 있습니다. 광복 이후에도 통일된 나라를 위해 노력했지만, 1949년 암살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김구의 삶은 나라를 위한 헌신과 올바른 가치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보게 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의문의 세력에게 청탁받아 김구 선생의 생을 마감하게 한 안두희라는 사람이 미웠고, 암살의 진상을 끝까지 밝히지 못한 우리 정부의 무능함에도 속이 상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의 총. 칼 앞에서도 살아남았는데, 우리 동포의 손에 세상을 떠나신 것은 정말 가슴 아프고 안타까웠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세상을 떠나심은 남북으로 갈라진 민족을 통일할 수 있는 민족적인 양심을 지닌 지도자가 사라졌다는 뜻이기도 하고, 아름다운 문화 국가 건설의 꿈이 사라졌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하루 빨리 통일 조국이 되어 김구 선생님의 한을 풀어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사형수 김구선생을 살린 전화
김구 선생이 인천 감옥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복역 중이던 1897년, 마침내 사형 집행일인 8월 26일이 되자, 감옥 안에 있던 죄수들이 슬퍼하는 가운데 김구 선생은 자기 이름이 불려지기를 태연히 기다렸습니다.
평소대로라면 낮에 사형을 집행하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인천 감옥의 관리들은 감옥 안에서 존경받는 사형수였던 김구선생을 사형시켜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 저녁 때까지 시간을 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기적 같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고종황제가 인천 감옥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 사형 집행을 중지시킨 것입니다.
사형수들에 대한 최종 명령을 내려야 했던 고종 황제는 김구 선생의 죄명이 '국모보수(국모의 원수를 갚음) 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시고 "사형이 아니라 오히려 상을 줄 일이다."라며 그 자리에서 사면을 결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혹시 자신의 결정이 늦게 알려지거나 잘못 전달되어 사형이 집행될까 봐 때마침 개설이 끝난 전화를 이용해 직접 감옥의 책임자에게 전화를 걸어 사면을 명령했습니다.
우리 나라에 전화가 들어온 것은 1882년이며, 한성 - 제물포 간의 장거리 행정 전화가 설치된 것은 김구 선생의 사형 집행일로부터 3일 전이었습니다. 그리고 고종 황제가 김구 선생의 사면을 명령한 전화는 우리나라 최초의 시외 전화로 기록되었습니다. 만일 전화 개통이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우리 민족은 김구라는 큰 산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김구 선생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 어머니 곽낙원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은 1858년에 황해도에서 태어나 1939년 임시 정부의 피난지였던 중국의 충칭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가난하게 태어나 14세에 시집을 간 그녀는 17세의 나이에 김구를 낳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아들이 일본군 장교 살해범으로 사형 선고를 받을 때부터 그녀의 고생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녀는 김구가 이 감옥에서 저 감옥으로 옮겨갈 때마다 따라다니며 떡장수까지 하면서 옥바라지를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김구의 얼굴을 대할 때에는 "나는 네가 경기 감사가 된 것보다 더 자랑스럽다."며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김구의 모든 면을 존중하면서도 단 한 가지 용서하지 않았던 것이 있었습니다. 김구가 제 아내에게 조금이라도 잘못 대하면 단호히 꾸중했던 것입니다. 나라를 위하는 큰 인물이라는 사람이 자식을 잉태하는 지어미를 존경하지 않는다면 나라 역시 제대로 사랑할 수 없다는 뜻에서 였습니다
한평생 독립운동을 하는 아들을 뒷바라지해 온 그녀가 마지막 남긴 말은, "내 원통한 마음을 어찌하면 좋으ㄴ냐!"였습니다. 고국을 떠나 먼 타지에서 눈을 감아야 했던 수많은 동포들의 애환이 그 한 마디에 모두 담겨 있었습니다.
이렇듯 김구의 어머니 곽낙원은 아들이 나라의 위대한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왔던 가장 튼튼한 버팀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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