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등에 업혀 돌다리를 건넜습니다. 초등학교 3~4학년 때 내가 살던 고향 '경주 사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1. 돌다리 위 아버지 등
'아버지께서 업어서 저를 건네주셨는걸요' 물론 다른 친구들도 건네주셨지만... 지금은 도로포장이 되고 차들만이 다니는 길이 되었지만, 책 속의 돌다리처럼 마을 어른들이 몇 번이나 다리를 고쳐 주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책 속의 <돌다리>처럼 어릴적 시골 마을에 돌다리가 있었는데, 비가 오면 물이 불어서 물을 건널 수 없게 될 때 아버지와 마을 어르신들이 모두 나와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들을 업어서 건네주었습니다. 그러다 고무신이 떠 내려가기도 하고 가끔은 물에 옷이 젖기도 했지요.
중학교를 다니는 논술 회원들과 이태준 작가의 소설 <돌다리>를 읽다 보면 언제나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지며 아련한 어릴 적 기억이 떠오릅니다. 소설 속 창섭의 아버지는 마을 길을 다듬고 장마로 무너진 돌다리를 자비로 고치며 살아가는 근검성실한 농부입니다. 제 기억 속에 남아있는 어릴 적 시골 마을에도 꼭 그런 돌다리가 하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비가 조금만 많이 내려도 강물이 금세 불어나 어린 우리들의 발걸음을 막아서곤 했습니다. 장갯물이 불어난 날이면 어김없이 마을 어르신들과 저희 아버지께서 다리 근처로 나와 계셨습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어린 자식들이 혹여나 거센 물살에 휩쓸릴까 걱정되어 빗속을 뚫고 마중을 나오신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억센 등 위로 덥석 업어 다리를 건네주셨고, 다른 친구들도 동네 어르신들의 등판에 업혀 무사히 강을 건넜습니다. 때로는 발가락에 힘을 주어도 고무신이 흘러내려 둥둥 떠내려가기도 하고, 옷자락이 흠뻑 젖어 엉엉 울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따뜻한 체온과 넓은 등판이 전해주는 안도감만큼은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아련하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2. 돌다리 건너던 초등 3~4학년
돌다리를 건너 등하교를 하던 때는 아마 제가 초등학교 3~4학년쯤 되었을 무렵이었습니다. 어린아이의 걸음으로는 돌다리 하나를 건너는 일조차 커다란 모험과도 같았습니다. 지금은 튼튼한 다리가 놓여 있어 날씨에 상관없이 안전하게 오갈 수 있지만, 당시에는 비가 조금만 내려도 물이 불어 다리가 잠겨버리기 일쑤였습니다. 물이 차올라 돌다리를 이용할 수 없게 되면 다른 멀리 돌아가는 길을 택해야만 했는데, 그 길은 어린아이의 짧은 다리로는 꼬박 20~30분을 더 걸어야 하는 아주 길고 고된 우회로였습니다.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어린 마음에 가급적이면 어떻게든 이 돌다리를 건너 집으로 가고 싶어 했습니다. 발을 동동 구르며 바지를 무릎 위로 둥둥 걷어 올리고 조심스럽게 돌을 밟다가 징검다리 사이로 발이 빠지는 일도 허다했습니다. 신발이 물살에 흘러내려가 찾아 헤매기도 하고, 결국 온몸과 옷이 흠뻑 젖어서 다리를 겨우 건너고 나면 자리에 주저앉아 젖은 옷의 물기를 짜내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비록 몸은 젖고 곤개구리처럼 흙탕물을 뒤집어썼지만,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웃던 그 시절의 등하굣길은 돌아보면 제 인생에서 가장 순수하고 빛나던 추억의 한 페이지였습니다.
3. 비가 오면 강물이 불어날까 봐 늘 걱정
시골 마을의 돌다리는 인위적으로 콘크리트 공사를 해서 만든 다리가 아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돌이 물살에 깎여 작아지거나 가팔라지면 걸음을 옮기기가 위험해지기 때문에, 마을 어른들이 합심하여 넓적하고 커다란 돌을 냇가에서 직접 운반해 다리를 보수하곤 했습니다. 아이들의 발걸음 폭을 배려하여 너무 멀지 않게 촘촘하게 놓아주신 다리가 있는가 하면, 조금 아래쪽에는 큰 어른들이 건너기 좋도록 거리가 떨어진 돌다리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 비 소식이 있거나 먹구름이 끼기만 하면 수업 시간 내내 강물이 불어날까 봐 마음을 졸였습니다. 하루는 정말 억수같이 장대비가 퍼부었던 날이 있었습니다. 늘 다리 근처에서 기다려주시던 부모님이나 어르신들도 무슨 일인지 나와 계시지 않았고, 강물은 삽시간에 불어나 돌다리를 까맣게 덮어버렸습니다. 세차게 몰아치는 물살은 어린 5~6학년 언니 오빠들조차 감히 건널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거세었습니다. 결국 다리를 건너는 것을 포기하고 까마득히 멀리 떨어진 새로운 다리가 있는 곳까지 우회하여 돌아가야 했습니다. 겨우 10분이면 도착할 집을 30분 넘게 비를 맞으며 힘겹게 걸어갈 때의 고단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필 그날따라 집에 부모님도 계시지 않아 혼자 서러움에 눈물을 훔쳤던 기억은 지금도 비가 내리는 날이면 불현듯 가슴 한구석을 아리게 만듭니다
4. 포도만 보면 그 포도밭 생각이 난다.
시골에서 태어나 자란 농부의 딸이기에, 저는 소설 <돌다리> 속 창섭의 아버지가 왜 그토록 땅을 팔지 않고 지키려 했는지 그 깊은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땅은 단순히 돈으로 환산되는 재산이 아니라 농군의 피와 땀, 그리고 영혼이 녹아있는 삶의 터전이기 때문입니다. 저희 집 역시 제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아버지께서 안타깝게 빚보증을 잘못 서시는 바람에 평생을 일구어온 땅을 모두 팔아 빚잔치를 해야만 했던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에 날려버린 땅은 논만 1500평에 달하는 10마지기였고, 밭은 산 하나를 꼬박 개간하여 만든 2000평 가까이 되는 온전한 터전이었습니다. 가족들의 피땀이 어린 그 넓은 논과 밭을 헐값에 허망하게 넘겨주고 다시 일어서기까지 부모님께서 겪으셔야 했던 고초와 눈물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밭은 온 가족이 붙어서 돌을 골라내고, 농약을 칠 때면 온 가족이 줄을 함께 잡으며 만든 땅이었습니다. 밭을 개간하고 포도나무를 심어 3년 동안 정성껏 가꾼 끝에 한여름 검붉게 익은 포도를 첫 수확하던 날의 기쁨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포도송이마다 정성스레 종이를 씌우고, 땀방울을 흘리며 박스에 담아 팔던 그 시절의 포도 맛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길가를 지나다 잘 익은 포도만 보면 눈시울이 붉어지며 그 포도밭과 함께 그리운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이 마음속 깊이 떠오르곤 합니다.
“포도만 보면 그 포도밭 생각이 난다” 붉은 포도밭에 서린 부모님의 땀방울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많이 보고싶습니다.
#돌다리
#포도
#아버지의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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