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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오마니별>: 전쟁의 상처와 이산가족의 극적 해후

by 최미화 2026. 8. 12.

김원일의 <오마니별>은 이산가족 이야기를 통해 우리 아픈 역사의 전쟁의 비극을 보여 주는 작품입니다. 작품을 읽으며 사회. 문화. 역사적 상황을 바탕으로 이야기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산가족과 통일 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고, 남북 사이에서 벌어진 상징적인 사건과 북한 인권 문제에 관한 글을 읽고 분단 상황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써 봅시다. 

김 원 일 글

 

 

[작품 들여다보기]

 

<오마니별>은 전쟁으로 인한 혈육 간의 생이별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전하고 있습니다. 피란길에 어머니와 누이를 잃은 충격으로 어린 시절의 기억을 상실한 채 전쟁고아로 평생을 살아온 조평안 노인은 6.25 전쟁 당시 죽은 줄 알았던 누이와 반세기를 훌쩍 지나 노인이 되어서야 만나게 됩니다. 까맣게 잊고 있던 모국어와 기억을 되돌려 놓을 만큼 강한 혈육 간의 정과 그리움의 힘을 통해 전쟁이 남긴 고통을 역설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6.25 전쟁 피란길에서 어머니와 누나를 잃은 아이는 비행기 폭격으로 머리에 큰 상처를 입고 자기 이름도 잊은 채 떠돌아다니다 염소 치는 조 서방에 의해 당주골로 오게 됩니다. 조 서방은 전쟁고아인 아이가 평안도 말씨를 쓰는 것을 보고 이름을 '평안'이라 붙여 줍니다. 맘씨 좋은 조 서방 내외가 평안을 자기 아들로 거두고, 평안은 조 서방 일을 도와 염소를 치며 56년을 살아왔습니다. 어느 날 분교의 현 선생이 인터넷을 통해 6.25 전쟁 때 헤어진 동생을 찾는 스위스의 안나 리 여사 산연을 접하고 조평안 노인을 찾습니다. 그러나 과거를 까맣게 잊은 통에 아나 리 여사가 헤어진 누나인지 기억할 수도 증명할 수도 없습니다. 스위스에서 안나 리 여사가 자녀들과 함께 한국에 오자 조평안 노인은 현 선생, 황 이장과 함께 서울로 가 그들을 만납니다. 전쟁 당시 누나가 죽었다고 믿고 살아온 조평안 노인은 누나의 존재  자체를 반신반의하지만,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중요한 단서인 '오마니별'을 기억해 내고, 남매는 반세기 만에 감격적으로 해후합니다. 

 

[한국 현대사와 이산가족]

'이산가족'이란 자신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리저리 흩어져서 서로 소식을 모르는 가족을 말합니다. 한국 현대시에서 이산가족의 모습은 시기마다 다른 양상을 나타내는데, 특히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많은 이산가족이 생겨났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이산가족의 원형은 일제 강점기에 해외로 강제 이주한 사람들에게서 발견됩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중국이나 소련, 일본으로 이주한 사람들이나 일제의 강제 징용, 징병 정책으로 중국.사할린이나 동남아 등지로 끌려간 사람들 가운데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귀환하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가족과 헤어진 채로 타국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해방 후 미소 양국이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남북으로 나누어 통치하면서 일제 강점기때 헤어졌던 가족과의 재회가 불가능하게 된 겨우도 많았습니다. 특히 1950년대에 발생한 6.25 전쟁으로 인해 약 1천만 명이 넘는 이산가족이 발생했습니다. 남북한을 막론하고 6.25 전쟁 당시 피란길에서 가족과 헤어져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이들도 많았으며, 6.25 전쟁 중 월남하거나 강제 납북되었다가 분단이 고착화되면서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게 된 이들도 있었습니다. 6.25 전쟁 이후 중국, 소련과의 국교가 중단되면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1960 ~ 1970년대에는 남북 적십자사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논의가 있어 왔으나 실행되지 못하다가, 1985' 남북 이산가족 고향 방문단 및 예술 공연단'으로 역사적인 첫 상봉이 이루어졌습니다. 첫 상봉 후 15년이 지난 2000년 6.15 남북 공동 선언을 통해 이산가족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기로 합의했고, 이후 남북 적십자 회담이 개최되어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 생사 및 주소 확인, 서신 교환 등시범적 사업이 논의되었습니다. 이후 2014년 2월까지 몇 차례에 걸쳐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가운데, 북측 이산가족 명단에는 월남인 유가족이나 월북인 외에 국군 포로, 남북 어부 등이 포함되기도 했습니다. 

 

[이야기의 배경 파악하기]

<오마니별> 시작 부분에서 황 이장이 조 씨를 찾아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조 씨의 누이로 추측되는 사람이 조 씨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려고 했습니다. 1951년 초겨울 어린 조 씨가 겪은 일은 피란길에 엄마와 손위 누이가 비행기 폭격으로 사망했습니다. 어린 조 씨는 어떻게 당주골로 오게 되었나요? 전쟁고아가 되어 문전걸식하며 떠도는 것을 염소 치는 조 서방이 보고 데려왔습니다. 염소 치는 조서방이 어린 조 씨에게 붙여준 이름은 '평안'이었는데, 소년의 말씨를 보고 출신지를 평안도로 추측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조 씨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고향은 평안도로 추측되고 가족은 없으며, 염소 치기를 하고 가는귀가 먹어서 귀가 잘 안 들립니다. 어린 조 씨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일은 '엄마와 누이가 비행기 폭격으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전쟁 중 피행기 폭격으로 어머니와 누이가 죽었기에 폭격 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내는 천둥.번개를 무서워합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전사 통지서를 받고, 어머니 또한 비행기 폭격으로 죽어 가는 모습을 목격했던 조 씨는 자신도 피란길에  비행기 폭격 파편을 맞아 머리를 다쳤기 때문에, 귀도 줌 멀고 머리도 굳어지게 됩니다. 그 결과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고, 누나가 죽는 모습을 보지 못했음에도 누나가 죽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의 폭력성이 어린 조 씨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가 중학교 다닐때쯤 한국 방송 공사(KBS)에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라는 제목으로 이산가족 찾기 특별 프로그램을 생방송으로 진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영화 <남과북>의 주제가  지금도 귓전에 울리는 구슬픈 노래가 눈시울을 적시게 합니다.  한민족, 학처럼 고고한 민족, 백의 민족 하루 빨리 통일이 되어 하나되는 민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마니별

#이산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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